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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월미도의 새로운 풍경, 고래와 마주한 시간 – 국립인천해양박물관 「고래와 인간」 전시 후기

by 영영69 2025. 9. 25.

 

 

인천 월미도는 세대를 떠나 한번쯤은 놀러간  곳입니다. 놀이공원, 유람선, 바닷가 산책, 해산물 음식점… 세대를 넘어 누구나 가본 적 있는 공간이지요. 저 역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또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그리고 지금은 아이와 함께 월미도를 찾곤 했습니다. 늘 시끌벅적하고 활기찬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번에 갔을 때는 조금 달랐습니다. 놀이기구가 끝나는 지점, 바다와 맞닿은 끝자락에서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을 마주한 순간, 월미도라는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갔을때는 주차공간이  넉넉해서  다음 월미도 방문에도 이곳에 주차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월미도 끝에서 만난 박물관

월미도의 박물관은 놀이기구들이 모여 있는 거리를 지나 맨 끝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주차장도 바로 옆에 있어서 차를 대고 잠시 쉬듯 들어가기 좋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 “놀이기구 타러 왔는데 박물관까지 갈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놀이기구의 들뜬 흥분과 박물관의 차분한 울림이 묘하게 균형을 이루더군요.
게다가 박물관 뒤로는 작은 등대가 자리하고 있어 전시를 본 후 나와서 바닷바람을 맞으면, 그 순간이 또 하나의 여행이 되었습니다. 바다 위에 비치는 햇살과 등대의 풍경은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장면이었고, 마음속에도 오래 남았습니다.

2.「고래와 인간」 – 전시의 첫인상

이번 기획전 주제는 「고래와 인간」이었습니다. 제목만 봐도 궁금해졌습니다. 고래는 바다에서 가장 신비로운 존재지만, 동시에 인간이 가장 많이 이야기해온 대상이기도 합니다.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니 어두운 푸른빛 공간 속에서 고래의 두개골과 척추뼈, 그리고 고래수염이 놓여 있었습니다.
고래의 크기를 직접 보여주려는 의도겠지만, 사실 저는 눈앞의 뼈만으로는 그 거대한 크기를 온전히 실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코너에서 고래 피부를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미끄럽거나 매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울퉁불퉁하고 거칠었습니다. 그 촉감이 너무 생소해서 순간 멈칫했을 정도였습니다. "아, 고래는 매끈한 유선형 생물일 거라는 건 나의 선입견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이 들었죠. 이런 작은 체험 하나가 전시를 단순히 ‘보는 것’에서 ‘겪는 것’으로 바꿔 주었습니다.

3옛날 사진 속 고래잡이 – 사람들의 욕망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벽면에 걸린 흑백 사진과 옛 엽서들이 시선을 잡습니다. 울산, 서귀포 등지에서 실제로 고래가 잡히던 시절의 기록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고래 옆에 서서 사진을 찍거나, 고래를 해체하는 장면을 담아두었습니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예전에 TV 다큐멘터리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큰 고래가 잡히면 큰돈이 된다.” 고래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생계를 지탱하는 자원, 즉 돈으로 이어지는 존재였던 겁니다.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에서는 기쁨과 흥분이 읽혔습니다. 한쪽에서는 삶의 터전이었겠지만, 지금 바라보는 제 눈에는 그 모습이 다소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4. 작살과 해체 도구 – 인간의 잔인함

전시 한가운데에는 실제로 사용되던 작살과 해체용 칼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금속의 날카로운 빛은 시간이 지나도 무뎌지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도구들을 보면 흔히 “잔인하다”는 감정을 가장 먼저 느낍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거대한 고래를 쓰러뜨리기 위해 날아가 박히던 작살을 상상하니, 마음이 서늘해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도구는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했습니다. 잔인함이라는 평가와 별개로, 고래 없이는 버틸 수 없던 시대의 현실이 이 도구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전시장은 이렇게 단순한 감정을 넘어 복잡한 생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5. 작은 고래뼈 조각, 귀여움 속의 지혜

전시 후반부에서는 이누이트가 고래뼈로 만든 작은 조각품들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크기는 손바닥에도 못 미칠 정도로 작았지만, 하나하나 정교하게 새겨진 얼굴이나 동물 모양이 귀여웠습니다.
그 순간 전시장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습니다. 앞서 보았던 거대한 뼈와 잔혹한 도구들 속에서 느꼈던 무거움이 조금은 누그러졌습니다. 북극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 고래는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삶을 지탱해주는 동반자 같은 존재였음을 이 작은 조각들이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감사와 존중의 의미가 담긴 생활의 흔적처럼 보였습니다.

 

6.가장 인상 깊었던 ‘소음’ 이야기

전시를 보면서 제 마음에 가장 크게 남았던 건 다름 아닌 ‘소음’ 이야기였습니다. 고래가 서로 주파수를 통해 대화하고 교류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배의 소음이 그 주파수를 깨뜨린다는 설명은 저에게는 낯선 충격이었습니다.
포경이나 환경오염 같은 문제는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알았던 내용입니다. 하지만 소음 공해라는 방식으로 고래를 괴롭힌다는 건 이번에 처음 제대로 알게 된 사실이었습니다. 고래는 눈보다 귀로 바다를 살아가는 존재인데, 우리의 편리와 이익이 그들의 대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고래는 가만히 있는데, 인간이 늘 움직이며 괴롭히는구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7. 박물관 뒤의 등대와 바다

전시를 모두 보고 나와 뒤쪽으로 걸어가면, 작은 등대와 바다 풍경이 이어집니다. 전시에서 받은 여운이 바닷바람과 섞이며 조금 더 깊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전시를 통해 인간과 고래의 관계를 돌아보고 나온 뒤, 눈앞에 펼쳐진 바다는 여전히 같은 파도를 보내고 있었지요. 그 풍경 속에서 전시의 메시지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월미도는 여전히 놀이기구, 해산물, 유람선으로 대표되는 여행지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험으로 저는 월미도를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국립인천해양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생겨, 이제는 단순한 즐길 거리 이상의 생각을 담아가는 여행지가 된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곳은 기획전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다음에 가면 또 다른 주제의 전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고래였지만, 다음에는 또 어떤 바다의 이야기를 들려줄까?’라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이번 월미도 여행은 놀이기구의 흥분과 박물관의 차분함, 그리고 등대 풍경의 여운이 함께 어우러진 하루였습니다. 특별전 「고래와 인간」은 고래를 단순한 바다 생물이 아니라, 인간과 깊게 얽혀 있는 존재로 바라보게 했습니다.
고래의 피부를 만져보며 느낀 낯선 촉감,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에서 읽은 욕망, 작살 앞에서의 불편함, 작은 조각에서 발견한 귀여움과 지혜, 그리고 소음 이야기가 남긴 충격. 이 모든 순간이 쌓여 “진짜 다녀온 경험”이 되었습니다.
인천을 찾는다면, 월미도의 새로운 풍경을 꼭 만나보시길 추천합니다. 바다와 놀이, 그리고 생각할 거리를 함께 가져갈 수 있는 곳—그게 바로 지금의 월미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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